[노동자 열전⑦] ‘철가방’에서 ‘라이더’까지···
24년 배달노동자 이성희
“배달 플랫폼이 주류가 되면서 배달노동은 ‘일자리’가 아닌 ‘일거리’로 바뀌었어요.”

바야흐로 배달 전성시대다. 중국음식을 시작으로 성장을 거듭해온 국내 배달시장은 치킨과 피자 등으로 확대된 이후 한식, 족발 등 가능분야가 점차 늘어났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배달대행업이 생겨났고, 이후 배달이 안 되는 분야를 찾기 힘들 정도로 배달은 대중화했다. 그러다 2020년 초반부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법적인 조치와 함께 감염을 걱정한 소비자들이 매장을 찾는 비중이 줄어들면서 이제 배달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배민라이더로 일하고 있는 이성희는 이런 배달의 역사를 모두 경험한 산증인이다. 중국집에서 배달을 시작한 뒤 24년째 배달노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를 지난 7월 23일 서울 마포에 있는 배민라이더스지회 휴게실에서 만났다. 이성희는 배달노동자로 일해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일자리는 사라지고, 일거리만 남았다”고 말했다.
‘숙식제공, 월급 70만 원’이란 신문광고에
1997년 대구 대진각에서 시작한 배달노동
“대구 시내에서 다니면 친구들하고 마주칠까 봐
모르는 동네에서 배달일을 시작했어요”
그가 배달노동을 시작한 건 IMF 외환위기가 우리나라를 휩쓸던 지난 1997년이었다. 당시 대구에 있던 조선일보 지국에서 영업직으로 일한 이성희는 배달일을 시작했다. “대구에 월세방을 얻고, 조선일보 지국에서 영업직으로 일하고 있었어요. 월급이 60만 원에 수습이 6개월이라고 했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월세 내고 나면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두달만에 그만뒀어요. 그런데 신문에 나온 ‘숙식제공, 월급 70만 원’이란 광고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렇게 27살이던 1997년 12월에 대구 달성군에 있는 대진각에서 배달노동을 시작했어요.”
배달노동을 시작할 때만해도 이 일을 오래 할 생각은 아니었다.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에게도 중국집에서 배달을 한다고 알리지 못했다. 평소 생활하던 대구 시내가 아닌 대구 외각인 달성군에서 배달일을 한 것도 누가 볼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대구 시내에서 다니면 친구들하고 마주칠까 봐 모르는 동네에서 배달일을 시작했어요. 중국집 주방 옆에 조그만 방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먹고자면서 아침 여덟시부터 저녁 아홉시까지 한달에 두 번만 쉬면서 일했어요.”

당시 배달노동은
‘철가방’, ‘아저씨’, 심지어 ‘짱깨’에
이르기까지 마구잡이로 불리면서
제대로 된 일자리로 대접받지 못했다.
지금은 ‘라이더’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가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철가방’, ‘아저씨’, 심지어 ‘짱깨’에 이르기까지 마구잡이로 불리면서 제대로 된 일자리로 대접받지 못했다. 그리고, 배달노동을 하찮게 취급하는 사회적 시선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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